글 울산인권운동연대 편집위원회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아들이 대드니까 뺨을 때렸다.”, “집 앞에 세워둔 차에 못으로 낙서를 한 아들을 회초리로 때려서, 아들이 2주간 치료를 받았다.”

피해자가 ‘아들’이라는 전제를 뺀다면 가해한 사람은 ‘폭행죄’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두 사건의 가해자(=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 속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민법 제915조에 따른 것입니다.

2019년 5월 23일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제외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발표이후 부모의 체벌, ‘사랑의 매’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잘못하면 맞을 수도 있지”라는 암묵적 인정이 성장과정에서 내재화 되어버린 부모세대는 당혹스럽습니다.

‘인권’의 시각으로 ‘사랑의 매’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니 불편합니다.

‘사랑의 매’가 인정될 수 없는 이유는 명쾌합니다. 권력과 폭력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부모, 어른, 선생님 등)의 시각에서 기준이 정해지고, 판단되고, 집행됩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폭력은 정당화 됩니다.

상대에 대한 인격체로서의 존중이나 권리주체로서의 인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논쟁 역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어른들)만의 논쟁일 뿐. 피해 당사자인 아이(자녀)들은 빠져 있습니다.

‘양육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이자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후 체벌, 즉 ‘사랑의 매’를 바라봅니다. 자녀가 늦게 들어왔을 때 아버지가 ‘사랑의 매’를 들었다면, 아버지가 늦게 들어왔을 때 아이도 ‘사랑의 매’를 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다고 선생님이 ‘사랑의 매’를 들었다면, 아이들도 정결하지 못한 복장의 선생님에게 ‘사랑의 매’를 들어도 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자녀들도 부모를 사랑하고, 아이들도 선생님을 사랑하니까요! 비약이 조금 심했습니다.

혹시나 ‘사랑하니까!’라고 정당성을 부여하고 권한을 권력으로 행사하면서 스스로에게 체벌권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사랑’이란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 시키지 맙시다.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

※ 대왕암소식지 2019년 여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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