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령시 홍보요원 최홍대입니다.😄

지난 4월 25일(금)~27일(일) 3일간 보령에서는 '2025 보령 국가유산야행'이 개최되었는데요.🎉

'2025 보령 국가유산야행'에서는 '토정 이지함'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저는 오늘 그런 '토정 이지함'이 걸었을 보령의 길을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보령의 갈매못순교성지보령 서해랑길 61코스에 속해 있는 구간입니다.🚶

서해랑길 61코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면서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갈매못에서 처형당한 다섯 명의 믿음이 있었던 순교지 갈매못성지는

천주교의 성지로는 유일하게 바닷가를 보는 위치에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천주교도들의 탄압은 조선의 개국 시기와도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본과 달리 조선은 적절한 시기에 개국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는 천주교도 박해 시기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는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자 병인박해가 마무리되었고,

1886년 조선과 프랑스의 국교 수립으로 천주교 포교가 공식으로 승인되었습니다.

​​서해의 바다로 이어지는 길인 서해랑길에서 보령 61코스를 모두 걷지 않고 이곳 갈매못순교성지에서

오천항을 거쳐서 조선시대에 축조된 석성인 충청수영성까지만 걸어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곳 오천항은 무엇보다도 키조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오천항 방문하실 때 키조개 맛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통영으로 인해 통제영하면 남해를 생각하지만 서쪽을 방어하던 곳으로 보령의 수영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지역마다 수군 지휘부인 수군절도사영으로 부산 수영, 경남 통영, 전남 여수에도 남아 있습니다. 🗺

​충청수영성은 위쪽에서 내려오는 길아래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때로는 아래에서 올라가는 것이 좋을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위에서 내려오면서 바다를 조망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2025 보령 국가유산야행'에서는 왜 이지함을 주제로 개최하였을까요?

토정 이지함의 집안은 좋았지만 마치 외톨이처럼 돌아다녔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점쳐주고 상담을 해주었던 사람입니다.

​토정 이지함의 묘가 보령에 있기 때문에 보령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거론이 되곤 합니다.

탁 트인 바다처럼 탄탄대로를 갈 수도 있었지만 토정 이지함은 그런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품은 호방하고 따뜻했으며 자신이 나아가야 될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알았기에 화를 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지함은 앞날을 예측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토정 이지함이 세상의 이치를 잘 알았다기보다는 잘 살폈던 것으로 보입니다.👀

충청도라는 명칭이 청홍도로 바뀐 것은 역모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충주라는 중심도시의 양반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충주는 유신현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충주의 충은 지명 앞에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이지함은 그 변화를 미리 알고 충주에서 바로 보령으로 내려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토정 이지함도 수없이 갈매못이 있던 곳에서 오천항충청수영성이 있던 곳까지 오가곤 했을 것입니다.

이지함에게 남은 것은 보령 바다의 풍경이었으며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요?🤔

이렇게 걸어본 길은 5월에도 가기에 좋은 여정 길입니다.👍


홍보요원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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