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강씨 통계공 강회중의 재실인 경덕재는 국가유산입니다.

진주강씨 통계공파의 파조가 되는 분으로 고려말 보문각 대제학을 지냈습니다.

재실을 1960년에 세워졌고, 1998년에 중건, 2012년에 주변 임야를 매입했다고 합니다.

경덕재는 숭의문 옆으로 축대가 있고 안내석 비문에는 진주강씨 통계공파종회라고 적혀있습니다.

고려말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진주 '강공' 휘 '회중' 호 '통계'의 산소를 보우하는 재각이다.

1960년 경기도 이천에 있던 명성왕후 친가를 매입하여 그 목재로 경덕재를 이곳에 처음 세웠으나 4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퇴락하여 1998년 태백산 목재와 산청 도요지 기와로 문화재급 재각을 건립하였다. 통계공의 아버지 공목공은 고려 말 문하찬성사를 지냈으며 어머니는 원정공 진주 하즙의 따님이다.

통계공은 지리산의 영기 서린 경남 산청 남사리 오룡골에서 5형제 중 둘째로 탄생하였다. 고려 정당문학을 지낸 형 통정공과 함께 단속사에서 수학하여 형에 이어 1382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막내 동생 진원군도 문과에 급제하여 공양왕 사위가 되는 등 5형제 모두 고려조에서 현달하여 세인들은 그곳을 지금도 오룡골이라 부른다.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태종, 세종이 통계공에게 형조참판, 병조판서, 한성부윤 총제 등의 여러 관직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고 두문동을 거쳐 일산 고봉산 아래 배록동에 은거하다가 1421년 별세하였다. 전국 유림들이 공의 이같은 청사에 빛나는 불사 이군의 충절을 흠모하여 상주 봉강서원과 고려 숭의전 충신각에 공의 위패를 배향하여 매년 향례를 올리며 이곳에서는 음력 10월 초나흘에 공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추향제를 올린다.

공의 음덕으로 조선조에서 98분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는 등 후손들이 대창하였다.

숭의문으로 들어가면 경덕재 사당이 나옵니다.

고풍스러운 건물인 듯 하나 옛 모습과 현대가 어우러진 모습입니다.

통계공은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건국되자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며 은거하였다고 합니다.

경덕재 옆으로 고려보문각대제학을 지낸 선생의 신도비가 있습니다.

경덕재 뒤편으로 산기슭을 오르면 강회중 선생묘를 비롯하여 세 분의 묘소가 있습니다.

묘소 앞쪽으로는 진주강씨 효자비가 있습니다.

경덕재는 건자산을 뒤로하고 도시의 발전에 따라 아파트촌 사이에 예스러운 가옥으로 고풍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문을 닫고 있는데요. 경덕재를 관람하시려면 전화로 문의를 하셔야 내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5년 고양시 소셜기자단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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