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전
지역의 뿌리를 지키는 공간, 대전 수정재를 만나다
도시의 중심부에서도 조용한 시간을 간직한 공간이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서구 배재로 236번지, 도로와 건물로 둘러싸인 도심 속에서
전통의 결을 품고 있는 한옥 공간, 수정재가 그 주인공입니다.
문화재자료 제30호로 지정된 이 재실은 단순히 옛 건물이 아닌,
지역의 정체성과 문중의 정신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문화유산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수정재는 밀양 손씨 역승공파 문중의 재실로, 중시조 손석(孫碩, 1371~1435)의 묘제를 준비하고 봉행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손석은 조선 전기 황강도 지역의 역승을 역임한 인물로 후손들은 그를 중심으로 문중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실이라는 공간은 전통적으로 제사를 위한 제수를 마련하거나 제관들이 머무르는 장소이자,
문중 내부의 회합 및 교육 기능까지 담당하던 유교 공동체의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수정재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945년 화재로 인해 기존 건물이 소실된 후,
1966년 문중의 논의에 따라 이듬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한 차례 정비가 이뤄지며 문화재적 보존 상태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정재는 안채와 행랑채, 그리고 보조 건물들로 구성된 전통 한옥 건축군입니다.
외부에서부터 중심부까지 일관되게 구성된 공간의 흐름은 전통 재실의 구조를 따르며,
중심에는 제례 공간으로 활용되는 건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건물 전체의 규모는 단정하면서도 질서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외부의 변화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심에 자리한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목조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넓은 대청이 배치되어 있고, 양옆으로는 따로 난방이 가능한 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각 건물의 지붕은 전통 팔작지붕 형식이며, 목재 구조와 흙벽, 기와 마감 등이 조화를 이루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형성합니다.
장식적인 요소보다는 기능성과 비례감에 집중한 구성은 재실 본연의 용도와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랑채는 공간을 외부와 분리하는 역할과 동시에 내부로 들어서는 통로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며,
출입문 너머로 이어지는 안마당과 재실의 배치는 전통 한옥의 격식과 의례적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수정재의 전체 공간은 엄격한 좌우대칭을 따르며, 앞마당을 기준으로 중앙에는 주재실,
양옆으로는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제례 준비와 문중 내 역할 분담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공간적 장치로 해석됩니다.
내부의 조경은 특별한 장식 없이 주변 자연의 흐름을 따르고 있으며,
일정한 거리와 선을 유지한 배치는 전통 유교 건축에서 중시하는 질서감과 조화를 드러냅니다.
입구를 지나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주 건물은 특별한 장식 없이도 중심성을 부여받고 있으며,
뒤편의 언덕과 자연 지형이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안정감 있게 감싸고 있습니다.
수정재는 단순한 고건축물이 아닙니다.
한 문중의 정신적 중심이자,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1992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0호로 지정된 이후,
재실의 보존과 관리는 문중과 지자체의 협력 아래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며,
현재도 일정한 형태로 제례와 문중 행사, 문화적 기념 활동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적 연속성은 단순히 보존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시화된 대전 중심지에서 이처럼 전통 건축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현재 수정재는 문중 중심의 행사와 제례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며, 일반 관람은 외부 출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 공간에서 충분히 전통 건축의 형태와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으며, 문화재 안내 표지와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문,
인근 석비 등의 시설을 통해 문화재로서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건물 앞에 설치된 안내 구조물은 방문자에게 이 공간의 유래와 기능을 알기 쉽게 전달하며,
선조의 삶과 후손의 전통 계승이라는 개념을 연결 짓는 매개 역할을 합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은 도심 속에서 문화의 무게를 견고히 지켜주는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정재는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전통과 정신을 현재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중요한 문화 자산입니다.
도시화된 환경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문중의 의례와 공동체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이 공간은
대전 서구 지역의 소중한 역사적 기반이자 정신적 지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전통 한옥의 구조미와 공간의 질서, 그리고 선조의 삶을 기리는 의례 문화까지,
수정재는 그 모든 것을 조용히 품고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 정체성과 역사적 연속성을 체감할 수 있는 이 장소는
지금도 묵묵히 사람과 시간, 공동체를 이어주는 고요한 연결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유산을 직접 마주하고,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뿌리를 다시 바라보고 싶다면 수정재는 단연 깊이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도심 속의 전통, 그 고요한 울림을 느끼고 싶다면 이 공간을 한 번쯤 천천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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