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일 전
대전 다크투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대전 산내 골령골)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철학자 조지 산티야나
8월의 찌는 듯한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 ‘대전 0시 축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축제 기간 내내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아이와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네요. 대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화하여 여러 세대가 어울려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축제에서 보았던 대전의 밝은 모습과는 달리 어두운 과거도 존재하는데요. 남대전에서 충북 옥천(군서면)으로 드라이브를 하며 알게 되었고, 대전 0시 축제에서 마당극으로도 공연된 ‘대전 산내 골령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이란?
1)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법적 절차 없이 보도 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최소 1,800명 이상, 최대 7천여 명의 민간인들이 북한군 남하 시 그들에 동조할 것을 우려한 충남지구 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집단 학살당해 대전 산내 골령골 일대에 암매장됨.
2) 1950년 9월 말에도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이 퇴각하자 민간인 수 천여 명을 북한군에 대한 부역혐의로 대전형무소에 수감했고, 일부가 산내 골령골에서 총살됨.
3) 6.25전쟁 발발 직전에는 여순사건 관련자들이 이곳에서 총살됨.
산내 골령골은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초등학교부터 충북 옥천군 군서면의 경계지점까지로 생각하면 됩니다.
무작정 가다 보면 곤룡터널을 지나쳐 충북 옥천군으로 넘어가게 되니, 내비게이션 설정은 ‘대전 동구 낭월동 곤룡로 93’으로 하는 것이 좋겠네요.
곤룡로 일대가 예전에는 골령골이라고 불린 곳입니다. 골령골 명칭의 유래를 보면 이곳의 지형이 임금이 입던 곤룡포의 모습처럼 넓게 퍼졌다 하여 곤룡재라고 하였으나, 6.25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학살, 암매장 장소로 알려지면서 뼈 골짜기 ‘고령(骨嶺)’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후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골짜기이자 추모의 공간인 ‘골령(骨靈)’으로 한자어를 고쳐 쓰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골령골로 부르게 됩니다. (출처: 대전 골령골 73년간의 진실, 골령골 –도서출판 문화의 힘) 그러나 행정명칭 및 도로명은 정식으로 ‘곤룡’이라고 표기하네요.
대전 동구 낭월동 곤룡로 93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 매년 6월 27일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진행됩니다. 2000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올해로 74주기가 된다고 합니다.
합동위령제 외에도 여러 단체에 의해 각종 추모행사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장마가 지난 8월의 한여름 더위에 온갖 풀로 뒤덮여 있어 전시물을 살펴보기에는 애로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대전형무소 정치범 및 민간인 집단1학살지입니다. 골령골에 총 8개의 학살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441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이곳에서만 1,227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네요.
그 당시의 실상을 설명하는 자료가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야외에 전시된 자료의 글을 읽기에는 너무 더웠습니다. 사실 전시자료에 햇빛이 비쳐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시자료의 내용을 그대로 담은 소책자를 획득하여, 에어컨이 켜진 자동차로 냉큼 들어갔습니다. 야외 전시자료는 소책자의 내용을 그대로 담은 것이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소책자에는 1999년에 기밀 해제되어 공개된 미군의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 보고서’의 내용과 18장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영국 종군기자가 작성한 기사와 3장의 사진이 이어집니다.
소책자를 읽어 본 후, 제2학살추정지로 걸어가 봤습니다. 제1학살지로부터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경사가 크지 않은 언덕입니다.
이곳에서는 2022년에 80구의 유해를 발굴했다고 합니다.
산내초등학교로부터 이어지는 곤룡로 좌측 일대로 6.25전쟁 전후 전국에서 희생된 민간인의 추모와 평화인권 교육을 위한 ‘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될 예정입니다. 이에 따라 사업 부지 내 무연고 분묘를 정리하는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진실과 화해의 숲이란?
출처: 행정안전부 공식블로그 2020년 12월 21일, 궁금해요! 정책뉴스 중 발췌
국제설계공모를 통하여 총 42개국 109팀이 참여하였고, 그중 GHS 설계회사(대표 이종철)의 “Motonymic Juxtaposition(환유적 병렬구조)”라는 작품이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과 희생자들의 역사적 기억을 숲의 공원으로 표현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위령시설은 2010년 활동 종료한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의 모든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과 단일 화해·위령시설 건립을 정부에 권고함에 따라 추진됐습니다. 2016년에는 지방자치단체 대상 공모를 통해 사업 관련성 및 역사적 상징성이 높고 접근성이 용이한 대전 동구 낭월동 집단희생지 일원을 사업 부지로 선정했습니다.
현재는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및 지자체에서 발굴한 유해 2,500여 구가 세종시 ‘추모의 집(세종시 봉대면 전동로 538 세종시 공설납골당 )’에 임시 안치 중이며, 전국의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한곳에 모시기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게 됐습니다. ‘진실과 화해의 숲(가칭)’은 총사업비 402억 원을 투입하여 부지면적 9만 8천여㎡, 건축 연면적 3천8백여㎡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며, 2022년까지 기본․실시설계를 마치고, 2024년까지 건축공사를 완료할 계획입니다.
이와 같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는 것에 조금 더 속도가 붙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은 글을 읽기보다는 영상을 보는 것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 유튜브 링크를 설정해 봤습니다. 글과 사진보다는 영상으로 보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남을 듯하네요.
KBS 대전 6.25 UHD 특별기획 골령골, 묻혀버린 진실 1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 KBS 대전 (2021년 6월 15일)
https://youtu.be/crwixbsAGLs?si=1pDFDckpBLezQ0UZ
주요 내용 ; 유족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당시 상황 재구성
[발굴 현장] 대전 산내 골령골 2021년까지 진행한 유해 발굴 현황 / 대전통 (2021년 11월 2일)
https://youtu.be/tKWjkWhSb4U?si=8gfgcS-Bww5FE9nf
주요 내용 ; 암매장된 사체가 뒤엉킨 유해 발굴 현장과 제1, 2학살지 항공 촬영
대전 산내 골령골서 유해 천여 구 발굴…대량 학살 실체 드러나 / KBS 뉴스 (2021년 9월 23일)
https://youtu.be/d2twz69ZcM8?si=tvs2jIoZUOaELt7L
71년 만에 마주한 골령골 학살의 진실... 발견된 유해만 1,250구 / YTN 뉴스(2021년 12월 11일)
https://youtu.be/qzzlXWQdVp8?si=g2V1QRykEcbyLPSp
영상 자료가 대부분 2021년을 마지막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2022년에 제1학살지에서 추가 발굴된 유해 111구와 제2학살지에서 발굴된 유해 80구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이 곤룡로 일대에 얼마만큼의 유해가 더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드라이브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이 길. 대전 동구 산내동 곤룡로. 지금은 비록 수풀로 뒤덮여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만약 이곳을 지난다면 우리의 역사를 한 번쯤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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