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전
[제주어 벨롱]❺ 직산하다 - 시인 김신숙
제주어 벨롱✦𝟬𝟱 직산하다
❝ 제주도 사람들은 결국 한라산에 다 직산하여 산다.❞
직산ᄒᆞ다🌟
앉거나 서거나 할 때에 윗몸을 벽 따위에 기대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멋진 제주어를 물어올 때가 있다.
멋지다는 것은 빛나는 것이라 벨롱벨롱과 베롱베롱을 자주 말한다.
두 단어 모두 반짝반짝으로 바꿔 쓸 수 있지만
물애기의 반짝이는 눈빛은 벨롱벨롱이라하고,
먼 바다 불빛은 베롱베롱이라 하니,
비슷한 단어라도 쓰임새가 다르고 혼이 다르다.
그렇다면 누가 내게 가장 마음에 와닿은 단어를 묻는다면,
나는 ‘직산ᄒᆞ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은 ‘맨도롱ᄒᆞ다’처럼 따뜻한 말이다.
지들커로 불 때던 시절에는 제주어가 더 와랑와랑했을 것이다.
제주의 할머니들에게 익숙하게 들었던 말 중 가장 따뜻한 말은 “이듸 직산ᄒᆞ라.”다.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는 순간도 있을 것이며, 따뜻한 밥을 차려준 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어렵고 곤궁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기댈 벽 있는 자리를 내어 줄 때가 있었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직산할 자리를 내어준다.
직산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비롯된 단어인지 궁금해 찾아보았지만 정확한 어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 단어를 훑어보다가 ‘직성이 풀리다’의 직성이라는 단어를 찾다가 별 성(星)자가 있어서 놀랐다.
타고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별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직성은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 운명을 맡고 있는 아홉 별을 뜻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도대체 옛사람들의 인문학은 어디까지였을까, 감탄했다.
그 후로 직산이 타고난 산이라는 느낌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아무 것이 태어나도 운명적으로 등을 기댈 산하나를 타고 나는 것이다.
그러니 직산은 태어날 때부터 기댈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를 세워 벽에라도 기대어 앉으라 ‘직산ᄒᆞ라’고 서로 말할 수 있는
공동체가 가장 따뜻한 마음이 머무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제주의 6월은 고사리 꺾으러 산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산에게 하직 인사를 하는 시기이다.
고사리는 3월부터 6월까지 제주도 전역에서 시작되는데,
언제인가 나의 엄마는 두손으로 합장을 하는 자세를 하고
“오늘은 산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왔져.”하고 말했다.
하직이라는 단어가 낯설어, 다시 물으니 하직 인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미였다.
이제 벼슬을 내려두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인사하는 것.
봄철 내내 엄마는 산에서 무슨 직책을 맡은 것마냥 고사리를 꺾었고,
하직인사를 함으로써 산은 고사리 채취라는 벼슬을
엄마에게 준 것마냥 재미있는 관직이 느껴져 인상 깊었다.
젊은 시절 바당밧에서 물질하던 엄마는 고사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훌쩍 나이가 나이가 들어 봄마다 고사리 따러 산으로 간다.
직성이 다르게 풀리는 시절인가 보다.
젊은 시절 가진게 없어 바당밧에 직산해 살던 엄마는 이제 봄마다 산에 직산해 살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결국 한라산에 다 직산하여 산다.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한라산이 보여, 마음은 내내 산에 기대어 산다.
─시인 김신숙🪶
@kimsinsook
✨「벨롱」 : 불빛이 멀리서 번쩍이는 모양 제주어는 먼 별에서 시작한 빛처럼 오랜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멀고 먼 곳에서 시작한 언어의 힘은 우리들 일상 속 반짝이는 활력을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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