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전
너른 부모 마음처럼 손 가지 내밀어 우리 쓰다듬는 척정리 은행나무
“전설 따라 삼천리” “전설의 고향”
MBC와 KBS에서 각각 방송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프로그램입니다. 명확하게 확인한 바는 없지만
이 두 프로그램에 꼭 등장(?)했을 나무가 있습니다. 무려 8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고성 대가면 척정리 관동마을에 자리합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데 좁은 길도 마다치 않고 최단 거리를 설정했더니 정말로 좁은 임도를 안내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은행나무 가는 길에 ‘가짐 없는 큰 자유'를 누린 빈민의 벗 고 제정구 선생의 생가가 있는 척곡마을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척곡마을에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관동마을입니다. 관동마을 성지농장으로 가는 좁다란 길목에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입구에는 행은정(杏隱井)이라는 우물이 있습니다.
진양 정 씨 은열공파 문중에서 여기 고성에 정착하면서 이 샘을 젖줄로 일가가 번성한 내력이 빗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물소리는 주위 대나무 사이에 놓여 더욱 청아하게 들려옵니다.
우물을 지나 20m 정도 산 쪽으로 올라가면 은행나무가 나옵니다. 두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아 뒤로 몇 걸음 물러나고서야 제대로 풍채를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지지대 5개에 의지해 서 있습니다. 푸르름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선 모습이 당차 보입니다.
840년으로 추정하는 은행나무는 나무높이가 35m, 가슴높이 둘레가 850cm, 밑동 둘레는 810cm 가랑이고 나무에서 가지와 잎이 많이 달린 줄기 윗부분인 나무갓은 너비가 24m 정도입니다.
나무 아래로 향하자, 젖꼭지 모양의 유주(乳柱)들이 보입니다.
산림청에서 펴낸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에 따르면 “옛날, 이 마을에 시집온 이씨 부인이 첫딸을 잃은 후 은행나무를 찾아 100일째 치성 끝에 그렇게 바라던 아이를 얻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그렇지만 부인은 아이에게 먹일 젓이 나오지 않아 시어머니의 미움을 사게 되자 은행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말았다. 은행나무는 이씨 부인이 목을 맨 순간에 그 가지가 아래로 처지면서 마구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은 천둥과 번개를 요란하게 치며 세차게 비를 뿌렸다. 다음날에는 은행나무 가지에서 볼록하게 생겨 젖꼭지 모양을 한 것이 여기저기에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은행나무 유주였다.”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사연에 더욱 애잔하게 보입니다. 시어머니는 이 유주를 잘라 나온 즙액을 손자에게 먹여 키웠다고 합니다.
이런 효험(?)을 기대하며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나 득남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100일 기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유주를 베어 달여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는 설 때문에 유주가 많이 잘려 나가기도 했답니다.
전설을 되뇌며 탑돌이 하듯 나무 주위를 돌았습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이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푸르른 나뭇잎은 틔운 나무가 경이롭습니다.
슬며시 손을 얹고 눈을 감습니다. 하늘의 맑고 푸른 기운이 시나브로 나무를 따라 우리의 온몸으로 들어오는 기분입니다.
은행나무 사이사이로 빛 내려옵니다. 깊고 풍성한 나뭇잎을 비집고 말갛게 얼굴을 내미는 햇살이 반갑습니다.
근처에는 또한 200년이 넘은 모과나무도 있습니다. 벌써 은은한 모과 향이 풍겨오는 듯합니다.
농익은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면 여기 다시 찾아올 생각입니다.
그때는 온통 노랗고 푸르니 더욱 아름다운 자태로 우리를 맞겠지요. 마치 그림을 그린 듯,
가을빛이 아름다운 사선을 그리는 사이로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이면 이보다 곱고 아름다운 풍경화가 또 있을까요.
여름 내내 무성한 잎의 넓은 그늘에 안겨 여름의 열정을 잠시 잊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빛나는 열매가 맺혀 있습니다.
척정리 은행나무는 너른 부모의 마음으로 손 가지를 내밀어 우리를 쓰다듬습니다.
* 찾아가는 길 : 고성 대가면 척정리 1052(성지농장 인근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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