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바람길숲 인물의숲에는 평택을 빛낸 인물 열세 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민세 안재홍 선생을 탐구합니다.

평택의 인물 흔적을 찾아서 : 민세 안재홍 탐구는

민세 안재홍 생가를 찾아 톺아봅니다.

민세 안재홍 생가는

평택시 계류지 1길 7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생가 주변은 고덕신도시 개발 중으로 마을이 없어져 생가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서정리역과 서정리 시장에서 청북행 마을버스

663번, 66A, 8-1번이 민세 안재홍 생가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민세 안재홍 생가는 대문간까지 있었던 큰 집이었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새로 지은 대문채만 남아 있습니다.

민세 안재홍 생가는 경기도 기념물 제135호이며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 시설입니다.

평택을 빛낸 인물 민세 안재홍(1891~1965)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으며, 사학자이자 교육자였습니다.

안재홍 선생의 호 '민세(民世)'는

"민족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민족으로'라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 주필과 사장으로 재직하였으며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을 이끌었던 민족지사였고

고대사 연구와 문자 보급에 앞장선 학자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홉 차례 투옥되어 7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민세 안재홍 선생은

해방 후 통일민족국가 수립에 헌신하였고

평택 제2대 국회의원이기도 했는데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1965년 평양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1989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1991년 국립 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위폐를 안치했습니다.

안채 옆으로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이곳은 향나무와 우물입니다.

향나무는 수령이 15년이고 크기는 4m로

민세 안재홍 선생이 아꼈던 향나무라고 합니다.

우물가에 향나무가 있으면 물맛이 좋다고 하지요.

민세 안재홍 생가 안채는 1914년에 건립된 110년이 된 고택이고

사랑채는 1932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안채는 11칸 규모로 'ㄱ' 형 초가로 안방과 대청과 건넌방이 일렬로 배치되었으며

부엌과 대청마루 사이에 연결된 통로가 특색인 민도리집입니다.

20세기 초기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기지방의 전통가옥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안재홍 후손이 살아 대청을 공개해 주었는데

지금은 후손인지는 모르겠으나 생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를 합쳐서 보면 'ㄷ'자 모습의 배치입니다.

단아하고 우아한 사랑채입니다.

팔작지붕으로 'ㅡ'형 구조이고 1칸 반의 온돌방과 대청마루보다 높은 누마루가 있어 운치가 있습니다.

민세 안재홍 선생은 이곳 사랑채에서 일제강점기 말기에 한국고대사 연구를 하였으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교열하고 간행하였다고 합니다.

평택을 빛낸 인물 민세 안재홍 선생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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