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전
조선시대 읍성의 교과서 사적 제153호 울주 언양읍성
지난 주말에 울주 언양 읍성에 다녀왔습니다.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를 지나면서 돌로 탄탄하게 세워진 성곽이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고 왔답니다.
울산 남문지, 서문지, 동문지, 북문지에 이르는 언양읍성은 조선시대 읍성으로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서 가니까 북문지로 안내해 주더라고요.
북문지에는 언양읍성 안내소와 주차공간이 있어서 차량을 이용하시는 분들이라면 이곳을 이용하세요.
안내소에는 읍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현재에 이르는 읍성의 모습과 발굴 과정이 담긴 액자도 있고 앞쪽에 스크린이 있어서 읍성에 관한 영상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울주 언양읍성 북문지 표지판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곳은 1390년 처음 토성으로 축조된 것을 1,500년 연산군이 석성으로 고쳐 쌓으면서 확장한 것이라고 해요.
성의 둘레는 약 1,500m, 높이는 6.3m로 하부에는 큰돌을 세워서 쌓거나 눕혀 쌓되 빈 공간에 잔돌로 채운 형태로 상부로 갈수록 작은 돌로 성벽을 쌓았습니다.
밖으로 튀어나와있는 부분은 치성이란 것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을 쏘기 위해서 만든 시설입니다.
북문지에는 치성이 두 군데가 보이는데, 성문과 각루 사이에 12개의 치성이 있다고 해요.
안쪽으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빼곡히 쌓여있는 모습이 그저 신기합니다.
논을 가로지르는 길은 언양읍성 남문지로 가는 길입니다. 바닥에 남문지에 있는 영화루의 그림이 보인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거예요.
6월의 언양읍성은 푸르름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개구리 소리도 들리고 새들도 날아다니는 여유로움도 함께 느낄 수 있어요.
드디어 만난 울주 언양읍성 영화루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남문은 언양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는데요.
1800년대 초반 '진남루'에서 '영화루'로 바뀌었으며, 1900년대 최종 소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화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구조입니다.
기둥머리 부분에는 날개 모양의 익공 2개를 포개놓은 이익공을 두었으며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입니다.
주말에 방문했는데 영화루에 앉아서 쉬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답니다.
앞뒤로 불어는 바람과 지붕이 만들어주는 그늘에서 편안하게 쉬었다 가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루는 둥근 반원형의 성벽으로 감싸진 모습인데요. 이것은 좀 더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조를 보면 체성과 여장의 모습 그대로 복원이 되어 있는데요. 체성은 바닥의 기초부터 구멍이 뚫려있는 여장 아래까지를 부르는 말로 성벽 바깥쪽은 견고하게 쌓아 적의 공격을 막고, 안쪽은 잔디를 덮어 경사지게 했습니다.
1895년 관련 제도 폐지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이 많이 되었었지만 사적으로 지정하며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에요.
여장부분을 보기 위해 다시 영화루 위로 올라왔습니다. 체성 위의 낮은 담으로 성위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는 곳인데요.
긴 직사각형 모양의 근총안은 가까이에 있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정사각형 모양의 원총안은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든 구멍입니다. 그래서 근총안은 아래쪽으로 향해 기울어져있고, 원총안은 수평을 이루고 있답니다.
입구는 난간 추락의 위험으로 막아놓은 상태였지만 그 당시의 모습이 상상이 되더라고요.
언양읍성은 조선시대 읍성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전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안에는 각종 관아가 있었고 동쪽에는 동헌, 지금의 언양초등학교 자리인 서쪽은 객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니 함께 산책 겸 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사적 제153호 울주 언양읍성! 탄탄하게 지어진 읍성에서 언양을 지켜내려는 선조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언양에 오신다면 북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언양읍성의 산책로를 걸어보면서 우리나라 역사의 발자취도 함께 느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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