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는 문화재와 평택의 인물이

연결된 곳들이 있어요.

평택의 역사도 알 수 있고

평택의 인물도 알 수 있는 유익한 평택의 문화재 여행

22살의 젊디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이대원 장군 사당과 묘를 찾았어요!

이대원 장군의 사당과 묘는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 산83-6에 있어요.

이대원 장군 묘 이정표의 방향 표시를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면 사당과 묘가 있어요.

이대원 장군의 사당은 4곳에 있어요.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있고

이대원 장군이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손죽도

지금의 전남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손죽도)에

사당인 충렬사와 묘가 있고

고흥의 쌍충사, 여수 영당이 있어요.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있는

이대원 장군의 사당과 묘가 있는 곳이에요.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는 함평 이씨의 세거지이지요.

이대원 장군도 함평 이씨입니다.

홍살문으로 들어가 사당 앞에 있는

이대원 장군의 신도비각이에요.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 벼슬아치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무덤의 길가에 세운 비를 말해요.

이대원 장군의 신도비는 1699년(숙종 25) 건립되었는데

비문은 숙종 대 소론의 거두인 문신 남구만이 짓고,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조상우가 글씨를 쓰고,

비의 제목 글씨는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김진규가 썼어요.

신도비는 높이 3m로 규모가 큰 편이고

받침돌에 독특한 문양이 있어요.

이대원 장군 사당과 묘에 간다면 눈여겨보세요👀

조선 중기 무신인 이대원(1566~1587) 장군은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가 고향이지요.

1583년(선조 16) 18살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선전관으로 있다가 녹도만호가 되셨지요.

1587년(선조 20) 남해안 손죽도에 왜구가 침입하자

왜구를 토벌하고 적장을 사로잡는 데 큰 공을 세웠어요.

그러나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심암이

전공을 자신에게 돌리라는 요청을 거절해 미움을 샀고

1주일 후 다시 왜구가 침입하자 심암의 명으로 출병하게 되는데

피로가 풀리지 않은 채 군사 100여 명을 이끌고

손죽도로 출병하여 싸우다

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심암이 거절했지요.

3일간의 전투 끝에 이대원 장군은 패전하게 되었고

포로가 되어 항복하라는 권유를 거절하여 죽임을 당했어요.

이대원 장군이 전사하기 전 이 사실이 알려져

심암은 파면되고 이대원 장군이

수군절도사에 발령되었으나

나라의 명이 전달되기 전에 전사하여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어요.

이대원 장군이 전사한 지 44일 만에

심암은 처형되었다고 해요.

조선시대 가장 어린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22살의 굵고 짧은 생을 마감한

젊은 이대원 장군이에요.

이대원 장군의 동상을 살펴보면

앳된 얼굴 모습이어서 가슴이 더 뭉클했어요.

사당인 확충사 앞 정문에는

'충렬공사우'라는 현판이 있어요.

이대원 장군 사당은 이대원 장군의 고향인

내기리에 있었는데 자리가 협소하여

1978년 지금의 자리인

이대원 장군 묘 옆으로 사우를 재건하였어요.

경기도 기념물 제56호인

이대원 장군 사당인 확충사예요.

1597년 임진왜란 때 왜적이 사당에 불을 지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불이 꺼졌다고 해요.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소나기 '확' 자를 넣어

확충사라 했다고 합니다.

확충사에는 이대원 장군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으며

해전도가 그려져 있어요 🖋

1980년부터 음력 4월 6일 제향을 거행하지요.

이대원 장군 묘역이에요.

이대원 장군 가묘 양옆으로 부인인

경주 김씨와 용인 이씨의 무덤이

함께 있는 삼분의 모습이에요.

묘의 주인을 알려주는 표지석 묘표의 모습은

머릿돌이 없는 둥그스름한 비로

직사각 빗돌받침 위에 얹었어요.

묘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무덤 양옆으로 망주석이 한 쌍 있어요.

생묘가 아닌 속적삼을 넣은 가묘로

17세기 석물의 예술성과

경기 지역 능묘의 특성이 있는 문화유산이에요.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는데

전사하기 전 속저고리에 혈서로

절명시 28자를 지어 고향으로 보냈다고 해요.

혈서로 쓴 절명시는

해저문 진중에 바다 건너와 외로운 군사

힘 다하여 끝나는 일생 슬프다

나라와 어버이께 은혜 못 갚아

원한이 구름에 얼켜 풀릴 길 없네

<은봉야사별록>에는 손죽도 전투에서

녹도영 병졸 한 사람인 손대남이

살아 돌아왔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이대원 장군의 속적삼 절명시를 가지고 와

전해주지 않았을까 한다고 해요.

이대원 장군 묘 아래에는 충마총이 있는데

충마총 비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어요.

이 충마는 이대원 장군이 포로가 되어

이 사실을 본가에 알리고자 속삼을 벗어

혈서로 저 유명한 절명시를 써서

말등 위에 얹고 보내니

본가인 이곳까지 와서 전하고

임무를 완수한 후 즉석에서 순사하였다

홍살문 옆으로 있는 재실 충렬재입니다.

손죽도에서 나라를 위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평택의 인물 이대원 장군이에요.

단출한 문화재이지만

이대원 장군의 사당과 신도비와 묘역을

둘러볼 가치가 있는 문화재예요😄

시간 내어 평택의 문화재 탐방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평택 #평택시 #평택시민기자단 #평택문화유산 #문화재여행 #이대원장군

{"title":"평택시민기자단 | 평택의 문화재 여행, 손죽도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이대원 장군 사당과 묘를 찾아서","source":"https://blog.naver.com/pt_story/223903705514","blogName":"평택시 공..","domainIdOrBlogId":"pt_story","nicknameOrBlogId":"평택시","logNo":223903705514,"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