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기회기자단] 당신들의 헌신으로, 우리는 희망을 노래한다
[윤재열 기자]
수원시에 6·25전쟁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호국 여행’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보금자리는 파괴되고, 가족을 잃기도 했다.
밀고 밀리는 전쟁 속에 국토는 엉망이 됐지만,
다행히 휴전의 길을 찾았다.
피해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삶의 터전은 무너지고,
가슴은 절망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전쟁 폐허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 성장을 이뤘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며,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 선진국이 됐다.
참전 용사들이 희생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지켰기 때문이다.
7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들의 숭고한 헌신을 잊을 수 없다.
수원시에는 전쟁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여럿 있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그들을 찾아 떠나 본다.
그들의 헌신은 수원시민의 가슴에 영원하리라
수원시 인계동에는
수원 현충탑(팔달구 동수원로 335)이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시설이다.
현충탑 중앙에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영령들을 여기 모시다.
넋은 나라를 지키고 뜻은 후세에 이어졌으니
장하고 위대한 정신은 광교의 정기와 이어져
수원시민의 가슴에 영원하리라.”라고 쓰여 있다.
발을 딛는 순간
아름다운 예술 공간 분위기가 났는데,
머무르다 보니 경건한 마음이 든다.
현충탑 옆 언덕길을 오르면 동상이 두 개 있다.
청동 인물상인데,
조국을 위해 싸우던 군인,
경찰이 보이고 주먹을 쥔 시민과
깃발을 든 학생 모습도 있다.
우뚝 솟은 동상이 굳게 주먹을 쥐고
앞을 보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조국이 위태로울 때 머뭇거리지 않고 나섰던
의지가 빛난다.
바로 위 예술공원에서는
한국전쟁 관련 만화를 만난다.
만화가 김성환 화백이 종군기자로
전쟁 상황을 스케치한 그림 26점이 있다.
무너져 내린 집과 가족을 잃은 모습을
특별한 과장 없이 그렸는데
전쟁의 참상이 그대로 다가온다.
트럭을 타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전쟁터로 나가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게 울림을 준다.
나라를 위해 죽음의 전쟁터에 기꺼이 나가는
청년들이 슬프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전국이 그랬던 것처럼 수원도 포탄이 쏟아졌다.
당시 사진을 보면 수원화성 성곽은
성한 곳이 없었다.
장안문(팔달구 정조로 910)은 폭격으로
아예 웅장한 문루가 파괴됐다.
지금은 전쟁이 끝나고 옛 모습을 찾았지만,
옹성과 성벽에는 여전히 총알 자국이 남아 있다.
장안문 옹성 안에는 관련 안내가 있다.
바닥에 6·25전쟁으로 파괴된 장안문 사진과
복원 과정을 써 놓았다.
전쟁의 참상은 부끄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흔적이다.
즉 석축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우리의 아픔과 상처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짧은 생을 불꽃처럼 태우고 별이 된 사람들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장안구 광교산로 13)
정문에는 6·25 학도병 참전기념상과
6·25 참전 명단(졸업생과 학도병)이 나란히 있다.
6·25 학도병 참전기념상에는
“6·25 사변 50주년에 즈음하여 학도병의 몸으로
참전하여 전사하신 아름다운 영혼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여기에 새긴다.
<중략>
별빛처럼 후대에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라는
표현이 보인다.
군번도 없이 참전한 학도병들 이름을 써 놓았는데,
전사자도 있다.
짧은 생을 불꽃처럼 태우고
끝내는 별이 된 사람들 이름이다.
6·25 참전 용사 명단 비는 2011년 국방부로부터
6·25전쟁에 참전한 수원농고 출신
133명의 명패를 전달받아 2015년에 세웠다.
3회부터 14회 졸업생은
계급이 있는 군인으로 참전했다.
12회, 13회, 14회, 15회는 계급도 없이
이름만 있는 학도병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6·25전쟁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본다.
어린 나이에 군번도 계급도 없이
전쟁터에 나갔던 소년들 마음은 어땠을까.
젊은 나이에 오직 조국과 가족을 위해
총칼을 들고 나선 군인들은
진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 숭고한 뜻을 기억하는 순간
가슴 한편이 저릿하고 뜨거워진다.
맑은 햇살 기념비를 어루만지는 덕에
비에 새겨진 이름들이 선명히 보인다.
소중한 이름 하나하나를 읽어본다.
평화를 위해 희생했던 UN군들
6·25전쟁에는 UN군도 참전했다.
유엔 결의에 따라 먼 나라 대한민국까지 왔다.
수원시에서 의왕시로 넘어가는 길에
지지대 고개가 있다.
고개 우측에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장안구 장안로320번길 31-3)가
광교산 품에 안겨 있다.
프랑스군은 부산 상륙 후 수원에서 집결한
미국 2사단에 배속되었다.
기념비가 여기에 있는 이유도 한국에 파병된 뒤
수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기념비에는 당시 전투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지평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양구),
화살머리 고지 전투 등이 사진 자료와 함께 있다.
무려 4,000명이 참전했다.
사망 288명, 부상 818명, 실종 18명으로
총 1,124명이 피해를 봤다.
곧게 솟은 탑과 넓은 광장,
군인 조형물이 장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나폴레옹의 후예들로 낯선 나라에 와서
열심히 싸웠지만 생을 마감했던 젊은 병사들도 많다.
인류애를 실현했던 그들에게 머리를 숙인다.
탑과 광장을 광교산이 내려다보고 있지만,
평화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은 말이 없다.
권선구 서둔동(서호동로 10)에는
‘앙카라학교 공원’이 있다.
전쟁은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았다.
UN군으로 참전한 튀르키예군은 전쟁 중에
이런 어린아이들을 돌봤다.
그들의 따뜻한 손길은 전쟁이 끝난 뒤
1966년 잔류 중대가 철수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국땅에서 전쟁 중에 부모 잃은 아이들은 돌본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수원시는 2013년 튀르키예 군인들의 선행을
기억하기 위해 근처에 ‘앙카라학교 공원’을 세웠다.
바로 앞에 서호초등학교가 있는데,
여기 체육관 이름도 ‘앙카라관’이다.
튀르키예군이 보여준 고귀한 사랑을 기리고,
학생들과 지역 주민에게 알리고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6·25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
그들의 희생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헌신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일어설 수 있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번영을 이뤘다.
그들에게 특별한 보답을 못하더라도,
내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우리 몫이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것도
그들에게 바치는 경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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