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역사를 배우다

김제시 금산면 원평은 동학농민혁명과 3.1독립만세운동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입니다. 걷기 좋은 가을날 역사 탐방 코스로 잘 어울리는 지역이지요. 김제 원평을 걸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3.1독립만세운동 정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 김제 원평시장 >>

원평 걷기는 원평시장 입구 원평천에서 시작했습니다. 원평(院平)은 들이 넓어 원들, 너른들이라 불렀는데요. 한자로 표기하면서 원평(院平)이 되었습니다. 조선 말기에는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암리, 용흥리, 성암리 각 일부를 병합해서 원평리로 하고 김제군 수류면으로 편입됩니다. 1935년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개칭되면서 김제군 금산면 원평리가 되었고, 1995년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합되면서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로 되었습니다.

원평시장은 원평천과 접해 있는데요. 육로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 시기에는 물류가 배를 이용해서 물길을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높은 제방길이 생기면서 원평천과 원평시장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원평시장과 원평천 사이 제방길을 따라 걸어가면 작은 주차장이 있는 공터가 나옵니다.

이곳이 중요한 역사 현장입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1893년 3월 이곳에서 1만여 명의 동학교도가 대규모 집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이곳이 금구군에 속해 있어 금구집회라고도 하지만 원평집회를 의미합니다. 1달 동안 진행된 일련의 집회를 통해서 향후 전개될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할 지도부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동학 조직이 민중들과 급격히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버드나무 고목이 서 있는데요. 이 나무는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는 기미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우리나라 민족대표 33인이 중심이 되어 1919년 3월 1일 분연히 일어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각 지역으로 들불처럼 퍼졌고, 이곳 원평시장(당시 김제군 수류면 원평리)에서는 1919년 3월 20일(음력 2월 19일) 오일장을 기해서 만세운동을 하게 됩니다. 구월리 어유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된 원평 만세운동은 원평 오일장날 일몰시간인 오후 6시에 맞춰 진행했습니다. 일제 헌병과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원평시장은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장소이면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기미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옆에는 기와집 한 채가 있는데요. 광복군 남정 이종희 장군의 생가를 복원한 것입니다. 이종희 장군은 1890년 4월 19일 이곳 구미마을에서 출생했습니다. 의협심이 강했던 장군께서는 3.1만세운동 당시 일제의 잔인한 살인 과정을 직접 보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2남 1녀 어린 자식을 고향 마을에 남겨두고 만주로 떠났습니다. 1919년 조선의열단에 입단해 상해와 남경 등지에서 치열한 항일투쟁을 계속했습니다. 1943년에는 광복군 제1지대장과 고급 참모를 역임했습니다. 8.15해방을 맞아 1946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 도중 선상에서 별세했습니다.

이종희 장군 생가를 지나 구미마을로 들어섰습니다. 구미마을은 집들이 산을 등지고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마을 골목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마을 뒷산으로 이어집니다. 마을 뒷산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투가 있었던 구미란전적지입니다.

1894년 9월 삼례를 거점으로 동학농민군을 재조직하여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를 합니다. 10월 충청 경상도 농민군과 논산에서 합류하여 한양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조선 관군, 일본군 연합군과 공주 우금치에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대접전에서 동학농민군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패하고 후퇴하면서 계속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11월 25일경 원평까지 밀려 내려온 동학농민군은 구미란전투에서 패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피신했지만 관군과 일본군의 토벌작전에 대부분 체포되고 맙니다. 슬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곳 구미란전적지에는 이름 모를 동학농민혁명군 묘지만 쓸쓸하게 남아 있습니다.

구미란전적지를 돌아보고 다시 원평시장 방향으로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원평시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요즘은 어디나 그렇듯이 오일장과 상설시장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상설시장에는 가끔씩 사람들이 오갈 정도로 한가했습니다. 옛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원평시장을 나와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터미널을 지나면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입니다. 학수재 위령각으로 가는 길입니다.

학수재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구미란 전투에서 희생된 동학농민군과 이 지역의 동학 대접주였던 김덕명 장군을 비롯해서 원평 3.1만세운동 독립투사 아홉 분, 광복군 이종희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10월 15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 원평 집강소 >>

학수재에서 내려와 버스터미널 바로 아래쪽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인 원평집강소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설치한 집강소입니다. 원평집강소는 1894년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53개 군현에 설치한 집강소 중의 하나입니다.

이 건물은 백정 출신인 동록개가 대접주인 김덕명 장군에게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뜻을 전하며 기부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원평집강소 건물 뒤쪽에는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건물이 있습니다. 원평집강소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원평집강소를 관리하면서 이곳을 찾는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문화 행사 또는 체험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행사가 없는 경우에도 원평집강소를 찾는 사람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원평집강소 복합문화공간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원평집강소 건물이 잘 보이는데요. 휴식을 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이 꿈꾸었던 세상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길에서 역사를 배우다

김제 원평 코스 걷기

김제 원평 걷기 코스는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는 물론 3.1독립만세운동 유적지와 독립운동 유공자 생가까지 포함되어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코스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씩 돌아보길 권합니다. 가까운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ㄱ자형 교회인 금산교회와 금산사가 있어 연계해서 돌아보아도 좋겠습니다.


※ 가을, 걷기 좋은 전북 천리길 추천 ※

시원한 가을바람 맞으며 걷기 좋은 전북 천리길!

글, 사진=김왕중 기자

{"title":"동학농민혁명 유적지- 김제 원평을 걷다","source":"https://blog.naver.com/jbgokr/223232538358","blogName":"전라북도 ..","blogId":"jbgokr","domainIdOrBlogId":"jbgokr","logNo":223232538358,"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