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잠들어 있는 선사의 기억을 찾아서 -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암각화)
여행하는 인간 (Homo Viator)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우리의 유전자 어딘가에는 ‘떠남‘ 인자가 들어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과거로의 여행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답을 주기도 하지요.
가능한 한 더 먼 곳으로의 여행, 더 먼 과거로의 여행은 마음을 들뜨게 하고, 기대감을 증폭시켜 줍니다.
그렇게 해서 떠난 곳이 울주군 대곡천을 따라 걷는 여행이었습니다.
한반도에 인류는 언제부터 살았을까요?
그들은 어디에서 이곳으로 이동해 왔을까요?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요?
이런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 선사시대 유물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구석기의 ‘주먹도끼’로 1977년 주한미군이 한탄강에서 데이트하던 중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 작은 돌멩이가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인 보르도 교수에 의해 30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한반도에서도 원시 인류가 정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울산지역은 인류의 시원이 깃든 곳입니다. 원시 인류가 태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고 아마도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인 간절곶과 울산지역에 정착을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서생면 신암리 유적이나 장현동 황방산 신석기 유적이 있고, 또한 한반도의 선사문화를 대표하는 대곡천 일대의 암각화는 고대 인류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서
주소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34-1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가는 여행은 오래 전 소식이 끊긴 소중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에 주차를 하고 작은 다리를 건너면 시원한 물소리가 반겨주는데 이 계곡이 대곡천입니다.
조금 걷다 보니 강 건너로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 저절로 "우와~"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고,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이 아름다운 계곡과 반구대는 조선의 산수화가로 유명한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림으로도 남겼다고 하는데, 그림을 보니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과 흡사했습니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네요.
여름에는 훨씬 더 초록초록하고 시원할 것 같습니다.
이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반고서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반고서원(반계서원)은 고려 말 정몽주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생들이 세운 서원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반구대의 모습은 수려함 그 자체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선비들은 시를 짓고,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며, 나그네는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서원을 지나 오른쪽으로 다리를 하나 건너면 대나무 숲이 나타납니다. 짧지만 힐링 되는 숲길입니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공룡발자국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공룡이라니~ 정말 신기하다."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이라고 합니다.
강 쪽으로 내려가니 넓고 큰 바위 위에 물웅덩이처럼 둥근 모양의 발자국이 보입니다. 한쪽 방향으로 걸어간 듯한 느낌인데요. 공룡발자국이라고 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것 같았습니다.
길을 따라 5분쯤 더 걸어들어가니 길이 끝나는 부분에 드디어 반구대 암각화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암각화는 대곡천의 반대편에 잠겨 있는 바위 위쪽으로 그려져 있어 날씨가 좋은 날 오후에 빛이 들어오면 잘 보인다고 합니다.
망원경을 통해 관찰할 수 있었는데 곳곳에 그림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곳이 보였습니다. 선사시대 그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하면서도 정교하고 그 특색들을 잘 살려놓은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림 하나하나가 다 보물처럼 여겨졌습니다.
암각화는 너비 10미터, 높이 3미터의 커다란 바위에 그려진 그림으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살필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래의 그림과 고래 사냥하는 것은 약 7,000년 전부터 고래사냥을 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이라고 합니다.
글이 없던 시절. 그들은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요? 자식들에게 사냥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먼바다로 사냥을 나갈 때는 풍어를 기원하고 사고 없이 무사귀환을 바라며 제사도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암각화에 잘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다생물, 육지동물, 이웃들과 함께 어우러진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갑자기 그림 속의 동물과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고 환호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향유고래가 보입니다.
천전리 각석 (암각화)
주소 :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2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천전리 각석(암각화)을 보기 위해 계곡을 걸었습니다. 대곡천의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려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성질 급한 야생화는 꽁꽁 언 땅을 녹이고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청보라색의 현호색이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작고 여리지만 차가운 강바람과 추위에 굴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로 꽃을 피워낸 것이죠.
꽃이 무슨 의지가 있겠냐마는 겨울 속에서 봄을 피워낸 야생화를 보면 안생에서 못할 것이 없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겨울산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이 이 작은 야생화들입니다. 바람꽃, 노루귀, 현호색 등,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 녀석들이 봄이 왔다고 노래하네요.
청량한 물소리와 새소리, 꽃들의 인사를 받으며 걷는 길은 내 마음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누군가의 소원으로 쌓아 올린 작은 돌탑들이 강가에서 조용히 기도를 합니다.
약 2.5km의 산길을 걸어 천전리 각석에 도착했습니다.
천전리 바위에 새긴 그림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바위가 아래로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서 비와 바람을 막아 훼손이 덜 된듯합니다. 덕분에 그림이 선명하고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암각화 앞으로 흐르는 대곡천의 풍경은 그림 같아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습니다. 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었지요.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함 속에 먼 옛날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말을 걸어옵니다. 시공간을 넘어 다른 세상으로 여행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바위 하나가 이토록 깊은 사색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 신비롭기만 한 경험이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등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후대에도 선대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잘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운구 사진전 <암각화 또는 사진>
2023.11.22. 수 ~ 2024.03.17. 일
뮤지엄한미는 2023년 마지막 기획 전시로 강운구의 《암각화 또는 사진》을 개최한다. 강운구(1942~ )는 외국 사진 이론의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하여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반구대를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러시아, 몽골, 중국의 여러 암각화 사이트를 답사하며, 주로 5천 년 전쯤 제작된 암각화 속 사람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을 탐구한다.
출처:뮤지엄한미 삼청
강운구 사진작가는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고래가 왜 세로로 서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암각화를 답사했다고 하는데요. 강운구 작가의 <암각화 또는 사진>전이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2024년 3월 17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와 의미를 좀 더 알기 위해서 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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