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전
클래식, 동구를 만나다⑥ 슈베르트와 괴테의 <들장미>
나의 아카시아와 그들의 들장미 : 슈베르트와 괴테의 <들장미>
서아름 피아니스트·공간더이음 대표(울산 동구 출신)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동요 <과수원 길> 가사 속에 나오는 동구 밖이 아니라 내가 살던 그 시절 동구 안 우리 동네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참 많았다. 꽃잎을 잔뜩 뜯어서 동네 아이들과 경쟁적으로 꽃잎에 꿀을 빨아 먹었다. 길거리에 빨간 사루비아(샐비어) 꽃도 많았는데 그것도 맛있게 뜯어서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많던 나무들과 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꽃들과 나무들이 또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길은 새롭지만 여전히 예쁘다. 눈 속에 담긴 어릴 적 그 모습이 새로운 곳에 겹쳐서 보인다. 코 찔찔이 아이들도 보이고 촌스러운 동네도 보인다. 여전히 그대로 마음속에 담겨서 예쁘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의 <들장미>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를 모른 채 들으면 그 순수하고 경쾌한 멜로디 때문에 장미와 소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 같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시작은 이렇다. 한 소년이 들에 핀 장미를 발견하고 너무도 예뻐서 감탄하며 장미에게 달려가 장미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하지만 곧 그 소년은 장미를 바라보며 말한다. “널 꺾을 테야, 들장미” 그리고 장미도 반격한다. “널 찌를 테야! 날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결국 소년은 들장미를 꺾어버리고 장미는 반격하며 날카로운 가시로 소년을 찔러버린다. 하지만 그 외침은 소용없고 장미는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그렇게 3절까지 이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마지막은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을 후렴구로 노래한다. 그 아름다운 멜로디와 마지막 후렴구 때문에 더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해석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나에겐 그저 예쁘기만 한 곡은 아니다.
이 노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을 남긴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1749-1832)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여 만든 작품이다. 괴테는 젊은 시절 한 여인과 결혼을 약속하지만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그녀 곁을 일방적으로 떠나버린다. 청년 괴테의 미성숙한 사랑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를 담아낸 시이다. 이 시는 당시 굉장한 인기를 얻어 수많은 작곡가들이 괴테의 시를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슈베르트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슈베르트는 70여 곡에 달하는 그의 작품에 괴테의 시를 가사로 붙였다. 그가 출판한 첫 번째 작품 또한 괴테의 시에 노래를 붙여 만든 <마왕>이라는 노래이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무서운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나왔던 노래가 바로 슈베르트의 <마왕>이었다.
슈베르트는 생전 빛을 보지 못했던 작곡가였는데, 자신의 작품들을 모아 괴테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다해 작품을 보냈지만 괴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슈베르트는 괴테에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채 31살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가 남긴 곡은 1000여 곡에 달하며 그중 가곡은 600여 곡에 달했다. 그의 작품들은 사후 인정받으며 음악의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가곡의 왕이라고 부르게 된다.
괴테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그의 작품 <마왕>을 듣고 낭만적인 곡이라고 인정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 81세였다. 괴테가 슈베르트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좋아하기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고전시대에 살고 있던 그에게는 쉽지 않은 새로운 음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리거리에 꽃들이 만발했다. 지금은 그 길에 없지만 아직도 그 길을 지날 때면 어릴 적 아카시아 향이 기억 속에서 묻어 나온다.
※ 대왕암소식지 2025년 여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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