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도 계곡물은 흐르고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겨울 산은 눈을 기다린다. 가으내 모든 잎을 떨군 채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 안타까워 보일 지경이지만, 곧 하얗게 눈이 쌓이면 세상 무엇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자연의 예술작품으로 변화하게 된다. 겨울의 섬은 외롭다, 겨울의 바다는 매섭다, 겨울의 도시는 삭막하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되려 산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듬직하게 나를 품어주는 산.

처음 읍내에서 벗어나 산으로 자리를 잡아 이사를 왔을 때 가족들은 물론 많은 지인들이 하나 같이 이런 말을 했다.

‘겨울에는 어떡하니?’

이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겨울에는 (산이 많이 추울 텐데) 어떡하니?’

‘겨울에는 (산에 눈이 많이 내릴 텐데) 어떡하니?’

‘겨울에는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할 텐데) 어떡하니?’

세 가지 모두 정답이었다. 충분히 걱정을 들을 만했다. 작년, 우리 동네에 벚꽃이 만개했던 건 5월, 눈이 펑펑 내린 건 11월이다. 겨울은 일찍 오고 봄은 늦게 오는 동네다. 눈이 내릴 때마다 송풍기를 둘러메고는 제설에 나선다. 산 아래에서부터 내 공간이 있는 곳까지는 대략 200미터가 조금 안되는데, 길이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워낙 심해서 한번 내려갔다 올라오면 온몸에 땀이 주룩주룩 흐를 지경이다. 지난번 폭설이 내렸을 때는 눈이 얼어버리는 바람에 일일이 삽으로 얼음을 깨고 걷어낸 후 면사무소에서 나눠준 염화칼슘을 뿌려 길을 터야 하기도 했다. (반나절이 걸렸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했던 저 걱정 어린 말의 의미는 추위나 고립에 대한 걱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겨울에는 (할 일이 많아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텐데) 어떡하니?’

눈이 한껏 내리고 나면 계곡에 물이 는다. 눈이 쌓였다가 녹으면 말라있던 계곡에도 물줄기가 생겨난다. 겨울 산에 있는 계곡은 정말 흐르는 보석과 같다. 하지만 함부로 만질 수는 없는 물. (너무 차갑다.) 같은 물이라 하더라도 계곡물이 흐르는 풍경은 강이나 바다를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 든다. 콸콸콸 흐르는 생명력이라고 해야 할까, 바위에 부딪히고 튀기는 활력이라고 해야 할까, 역동적이고도 강렬한 에너지가 계곡에는 있다.

오늘은 산 아래에 있는 계곡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여기가 그냥 동네 흔한 계곡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도 찬란한 법흥계곡이다. 캠핑 좀 해봤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캠핑 성지! 봄과 여름에는 자리가 없어서 예약을 할 수 없다는 바로 그곳! 지금은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법흥계곡이다. 눈이 없어서 산책하기에 길이 편했지만, 반대로 계곡에 조금 더 그림처럼 눈이 쌓이고 얼음이 얼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물론, 눈이 쌓이고 얼음이 얼어 있는 날이면 산책을 못하지만 말이다. 내일부터는 한파가 시작된다고 한다. 세상에! 계곡물은 또 얼마나 반짝이며 예뻐질까. 계곡이 꽁꽁 얼면 한 번쯤은 산을 내려와 둘러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동네 산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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