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금산당과 만취당 고택을 다녀왔습니다.

서로 이웃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아요.

네비로 검색해서 도착을 하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이 근처의 넓은 공터에 주차를 하시면 된답니다.

저 멀리 소나무가 보이는데 280본이라고 해요.

산림유전자원보호림 금호읍 오계숲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지산 조호익 선생의

6대손이며,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선생이 만취당을 건립한 뒤

동네에 직접 나무를 식수하였다고 합니다.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그 아래 벤치가 만들어져 있어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영천 만취당고택을 가기 전 보이는 것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33호 금산당입니다.

영천 문화유산 금산당은 조선 정조 5년(1781)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1732~1800)선생의 후손인

장릉참봉 병문이 1900년에

차자인 명환의 살림집으로 건립한 것입니다.

현재 건립 당시의 전체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사랑채와 안채는

당시의 목조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재목이나 기법들 또한 격식을 갖춰져 있다고 해요.

안쪽으로 들어가니 후손께서 거주하시는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옛 모습 그대로 다 볼 수는 없지만

사랑채와 안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방해가 되지 않은 선에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금산당 너머에 보이는 것은

영천 만취당 고택의 광명헌입니다.

대문채 옆에 위치한 광명헌이라고 하는

새사랑채가 있는데

광명헌, 별묘, 보본재 등은

모두 후대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앉을 수 있는 의자 등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면

지금도 후손들이 가끔 사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방문했을 때 영천 만취당 고택 앞

차들이 서 있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이 고택과 관련된 분들이 계셨는데요.

잠시 사진을 찍는다고 양해를 구했답니다.

영천 문화유산 만취당 고택은 국가민속유산입니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의 구성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당시의 건축 양식과 주생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이 닫혀 있었는데

이번 방문했을 때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너무 반가웠어요.

생각한 것보다 안이 훨씬 넓었습니다.

고택과 관련되신 분들이 계셔서

사진을 이곳은 사진을 자세하게 찍을 수 없었어요.

영천 만취당 고택은

조선 정조 5년(1781)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의 집으로,

만취당은 이 집의 사랑채 이름입니다.

사랑채는 안채와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사랑 마당에서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문을

사이에 두고 큰사랑채와 중사랑채로 나뉘어집니다.

큰사랑채는 왼쪽부터 두 칸이 사랑방이고

큰 마루와 제방이 한 칸씩인데,

여성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제방을

사랑채에 마련한 예는 매우 드뭅니다.

중사랑채의 오른쪽에는 중사랑방이 있고

왼쪽에는 마루가 있습니다.

사랑채의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으며,

그 뒤쪽으로 별묘와 보본재가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옛 고택들을 볼 수 있는

영천 문화유산 금산당과 만취당 고택입니다.

금산당 만취당 고택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 윤은정님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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